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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47] 1차 왕자의 난 - 5

[뉴트리션=조선왕조실록 기획 기사팀]

임금께서 마침내 영안군(永安君)을 책명(策命)하여 세자로 삼고 교지(敎旨)를 내리었다.

“적자(嫡子)를 세우되 장자(長子)로 하는 것은 만세(萬世)의 상도(常道)이며, 종자(宗子)는 성(城)과 같으니 과인(寡人)의 기대(期待)이다. 다만 그대의 아버지인 내가 일찍이 나라를 세우고 난 후에 장자(長子)를 버리고 유자(幼子)를 세워 이에 방석(芳碩)으로써 세자로 삼았으니, 이 일은 다만 내가 사랑에 빠져 의리에 밝지 못한 허물일 뿐만 아니라, 정도전·남은 등도 그 책임을 사피(辭避)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에 만약 초(楚)나라에서 작은 아들을 사랑했던 경계로써 상도(常道)에 의거하여 조정에서 간(諫)했더라면, 내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정도전 같은 무리는 다만 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세자로 세우지 못할까를 두려워하였다. 요전에 정도전·남은·심효생·장지화 등이 몰래 반역을 도모하여 국가의 근본을 요란시켰는데, 다행히 천지와 종사(宗社)의 도움에 힘입어 죄인이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斬刑)을 당하고 왕실(王室)이 다시 편안하게 되었다. 방석(芳碩)은 화(禍)의 근본이니 국도(國都)에 남겨 둘 수가 없으므로 동쪽 변방으로 내쫓게 하였다. 내가 이미 전일의 과실을 뉘우치고, 또 백관(百官)들의 청으로 인하여 이에 너를 세워 왕세자로 삼으니, 그 덕을 능히 밝혀서 너를 낳은 분에게 욕되게 함이 없도록 하고, 그 마음을 다하여 우리의 사직(社稷)을 진무(鎭撫)하라.”

이에 문화와 김육(金陸)에게 명하여 나가서 세자를 알현(謁見)하게 하니, 세자가 문화를 불러 말하였다.

“대궐 안에 시위(侍衛)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빨리 대궐 안으로 도로 들어 가라.” 문화가 즉시 도로 들어가니, 조순(曺恂)이 세자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시녀(侍女)와 내노(內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밖으로 나가게 하라.” 문화가 또 나오니, 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나오는가?” 문화가 그 사유를 상세히 아뢰므로, 세자가 말하였다.

“그대를 이르는 것이 아니니 마땅히 빨리 도로 들어가 시위(侍衛)하라.”또 상장군 이부(李敷)로 하여금 대궐 안에 들어가 시위(侍衛)하게 하니, 임금이 조순에게 명하여 세자에게 갓과 안장 갖춘 말을 내려 주었다. 세자가 대궐 안으로 들어 갔다. 이제(李濟)가 사제(私第)에 돌아가니, 옹주(翁主)가 이제에게 일렀다.

“내가 공(公)과 함께 정안군의 사저(私邸)에 간다면 반드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듣지 않더니, 저녁때에 군사들이 뒤따라 와서 그를 죽이었다. 정안군이 이 소식을 듣고 그제야 놀라서, 즉시 진무(鎭撫) 전흥(田興)을 불러서 말하였다.

“흥안군(興安君)이 죽었으니 노비가 반드시 장차 도망해 흩어질 것이다. 그대가 군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흥안군 집에 이르러 시체를 거두게 하고, 노비들에게 신칙하기를, ‘만약 도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후일에 반드시 중한 죄를 줄 것이다.’ 하라.”

전흥이 그 집에 이르러 시비(侍婢)를 시켜 들어가 고하기를, “놀라지 마시오! 나는 정안군의 진무(鎭撫)입니다.” 하고는, 이에 시체를 염습(斂襲)하는 모든 일을 한결같이 정안군의 명령대로 하니, 옹주(翁主)가 감격하여 울었다. 남은은 도망하여 성(城)의 수문(水門)을 나가서 성밖의 포막(圃幕)에 숨으니, 최운(崔?)·하경(河景) 등이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남은이 순군옥(巡軍獄)에 나아가고자 하니, 최운 등이 이를 말리므로, 남은이 말하였다.

“정도전은 남에게 미움을 받았던 까닭으로 참형(斬刑)을 당하였지마는, 나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이에 스스로 순군문(巡軍門)밖에 이르렀다가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전하(태종)께서 왕위에 오르매, 하경과 최운은 섬기는 주인에 충성했다는 이유로써 모두 발탁 임용하게 되었다. 정안군이 여러 왕자들과 함께 감순청(監巡廳) 앞에 장막을 치고 3일 동안을 모여서 숙직하고, 그 후에는 삼군부(三軍府)에 들어가 숙직하다가, 세자가 내선(內禪) 을 받은 후에 각기 사제(私第)로 돌아갔다.

* 내선(內禪) : 임금이 왕세자에게 양위(讓位)는 하였으나 아직 즉위(卽位)의 예(禮)를 올리지 않은 것을 말함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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