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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46] 1차 왕자의 난 - 4

[뉴트리션=조선왕조실록 기획 기사팀]

이튿날 닭이 울 적에 임금이 노석주를 불러 대궐로 들어오게 하고, 이른 새벽에 또 이문화를 부르니, 문화가 서쪽 양정(?亭)으로 나아갔는데, 세자와 방번·제(濟)·화(和)·양우(良祐)·종(淙)과 추상(樞相) 인 장사길(張思吉)·장담(張湛)·정신의(鄭臣義) 등이 모두 벌써 대궐에 들어와 있었다. 

여러 군(君)과 추상(樞相), 대소내관(大小內官)들과 아래로 내노(內奴)에 이르기까지 모두 갑옷을 입고 칼을 가졌는데, 다만 조순(曹恂)과 김육(金陸)·노석주·변중량만은 갑옷을 입지 않았다. 석주가 문화에게 교지(敎旨)를 전하여, “교서(敎書)를 지으라.” 하니, 문화가 사양하기를 청하므로, 석주가 말하였다. “한산군(韓山君) 이 지은 주삼원수교서(誅三元帥敎書) 의 뜻을 모방하여 지으면 된다.” 문화가 말하였다.

“그대가 이를 아는가?” 석주가 말하였다. “적을 부순 공로는 한 때에 혹 있을 수 있지마는, 임금을 무시한 마음은 만세(萬世)에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문사(文詞)이다.” 문화가 말하였다. “지금의 죄인의 괴수(魁首)는 누구인가?”

석주가 말하기를, “죄인의 괴수는 다시 임금에게 품신(稟申)하겠으니 먼저 글의 초안(草案)부터 잡으라.” 하면서, 독촉하기를 급하게 하였다. 문화가 붓을 잡고 쓰면서 말하였다.

“그대도 글을 지을 줄 아니, 친히 품신(稟申)하려는 뜻으로써 지으면 내가 마땅히 이를 쓰겠다.”

이에 석주가 글을 지었다. “아무아무[某某]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도모하여 개국 원훈(開國元勳)을 해치고자 했는데, 아무아무 등이 그 계획을 누설시켜서 잡히어 모두 죽음을 당했지만, 그 협박에 따라 반역한 무리들은 모두 용서하고 문죄(問罪)하지 않는다.” 초안이 작성되자 석주가 초안을 가지고 들어가서 아뢰니, 임금이 말하였다.

“잠정적으로 두 정승이 오기를 기다려 의논하여 이를 반포(頒布)하라.” 조금 후에 도당(都堂)에서 백관(百官)들을 거느리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도당(徒黨)을 결합(結合)하고 비밀히 모의하여 우리의 종친 원훈(宗親元勳)을 해치고 우리 국가를 어지럽게 하고자 했으므로, 신 등은 일이 급박하여 미처 아뢰지 못하였으나 이미 주륙(誅戮) 제거되었으니, 원컨대 성상께서는 놀라지 마옵소서.” 이제(李濟)가 그때 임금의 곁에 있다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여러 왕자들이 군사를 일으켜 함께 남은 등을 목 베었으니, 화(禍)가 장차 신에게 미칠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시위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공격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아라. 화(禍)가 어찌 너에게 미치겠는가?” 화(和)도 또한 말리며 말하였다.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니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 이에 이제가 칼을 빼어 노려보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화(和)는 편안히 앉아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때 영안군(永安君)이 임금을 위하여 병을 빌어 소격전(昭格殿)에서 재계(齋戒)를 드리고 있었는데,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는 몰래 종 하나를 거느리고 줄에 매달려 성을 나와 걸어서 풍양(?壤)에 이르러 김인귀(金仁貴)의 집에 숨어 있었다. 

정안군이 사람을 시켜 그를 찾아서 맞이하여 궁성(宮城) 남문 밖에 이르니, 해가 장차 기울어질 때였다. 이때 사람들이 모두 임금에게 청하여 정안군을 세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정안군이 굳이 사양하면서 영안군을 세자로 삼기를 청하니, 영안군이 말하였다.

“당초부터 의리를 수립(樹立)하여 나라를 세워서 오늘날의 일까지 이르게 된 것은 모두 이것이 정안군의 공로이니, 내가 세자가 될 수 없다.” 이에 정안군이 사양하기를 더욱 굳게 하면서 말하였다.

“나라의 근본을 정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적장자(嫡長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안군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마땅히 처리함이 있겠다.” 이에 정안군이 도당(都堂)으로 하여금 백관(百官)들을 거느리고 소(疏)를 올리었다. “적자(嫡子)를 세자로 세우면서 장자(長子)로 하는 것은 만세(萬世)의 상도(常道)인데, 전하(殿下)께서 장자를 버리고 유자(幼子)를 세웠으며, 도전 등이 세자(世子)를 감싸고서 여러 왕자들을 해치고자 하여 화(禍)가 불측한 처지에 있었으나, 다행히 천지와 종사(宗社)의 신령에 힘입게 되어 난신(亂臣)이 형벌에 복종하고 참형(斬刑)을 당하였으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적장자(嫡長子)인 영안군(永安君)을 세워 세자로 삼게 하소서.”

소(疏)가 올라가매, 문화가 이를 읽기를 마치었는데, 세자도 또한 임금의 곁에 있었다. 임금이 한참 만에 말하였다.

“모두 내 아들이니 어찌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방석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너에게는 편리하게 되었다.” 하고는, 즉시 윤허를 내리었다. 대궐 안에 있던 정승들이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문화가 대답하였다.

“세자를 바꾸는 일입니다.” 석주(石柱)가 교초(敎草)를 봉하여 문화로 하여금 서명(署名)하게 하니, 문화가 받지 않으므로, 다음에 화(和)에게 청하였으나 또한 받지 않으므로, 다음에 자리에 있던 여러 정승들에게 청하여도 모두 받지 아니하였다. 이에 문화가 말하였다. “그대가 지은 글을 어찌 자기가 서명(署名)하지 않는가?” 석주는,

“좋다.” 하면서, 이에 서명하고 이를 소매 속에 넣었다. 조금 후에 석주가 대궐에 들어가 명령을 받아 나오면서 말하였다. “교서(敎書)를 고쳐 써서 빨리 내리라.” 문화가 말하였다.

“어떻게 이를 고치겠는가?” 석주가 말하였다. “개국 공신(開國功臣) 정도전과 남은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도모하여 왕자와 종실(宗室)들을 해치려고 꾀하다가, 지금 이미 그 계획이 누설되어, 공이 죄를 가리울 수가 없으므로, 이미 모두 살육(殺戮)되었으니, 그 협박에 따라 행동한 당여(黨與)는 죄를 다스리지 말 것입니다.” 변중량(卞仲良)으로 하여금 이를 써서 올리니, 임금이 시녀(侍女)로 하여금 부축해 일어나서 압서(押署)하기를 마치자, 돌아와 누웠는데, 병이 심하여 토하고자 하였으나 토하지 못하며 말하였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듯하면서 내려가지 않는다.” 정안군이 군기 직장(軍器直長) 김겸(金謙)을 시켜 무기고(武器庫)를 열고 갑옷과 창을 내어 화통군(火?軍) 1백여 명에게 주니, 군대의 형세가 조금 떨치었다. 갑사(甲士) 신용봉(申龍鳳)이 대궐에 들어가서 정안군의 말을 전하였다. “흥안군(興安君)과 무안군(撫安君)은 각기 사제(私第)로 돌아갔는데, 의안군(義安君) 이하의 왕자는 어찌 나오지 않는가?” 여러 왕자들이 서로 눈짓하면서 말하지 아니하므로, 다시 독촉하니, 화(和) 이하의 왕자들이 모두 나오다가, 종(淙)은 궁성(宮城)의 수문(水門)을 거쳐 도망해 나가고, 정신의(鄭臣義)만이 오래 머무르므로 이를 재촉하니, 그제야 나왔다. 도당(都堂)에서 방석을 내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미 주안(奏案)을 윤가(允可)했으니, 나가더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방석이 울면서 하직하니, 현빈(賢嬪)이 옷자락을 당기면서 통곡하므로, 방석이 옷을 떨치고서 나왔다. 처음에 방석을 먼 지방에 안치(安置)하기로 의논했는데, 방석이 궁성(宮城)의 서문을 나가니, 이거이(李居易)·이백경(李伯卿)·조박(趙璞) 등이 도당(都堂)에 의논하여 사람을 시켜 도중(道中)에서 죽이게 하였다. 도당(都堂)에서 또 방번을 내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방번에게 일렀다.

“세자는 끝났지마는 너는 먼 지방에 안치(安置)하는 데 불과할 뿐이다.” 방번이 장차 궁성(宮城)의 남문을 나가려 하는데, 정안군이 말에서 내려 문안에 들어와 손을 이끌면서 말하였다. “남은 등이 이미 우리 무리를 제거하게 된다면 너도 또한 마침내 면할 수가 없는 까닭으로, 내가 너를 부른 것인데, 너는 어찌 따르지 않았는가? 지금 비록 외방에 나가더라도 얼마 안 되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장차 통진(通津)에 안치(安置)하려고 하여 양화도(楊花渡)를 건너 도승관(渡丞館)에서 유숙하고 있는데, 방간(芳幹)이 이백경(李伯卿) 등과 더불어 또 도당(都堂)에 의논하여 사람을 시켜 방번을 죽이게 하였다. 정안군이 방석과 방번이 죽었단 말을 듣고 비밀히 이숙번에게 일렀다.

“유만수(柳曼殊)도 내가 오히려 그 생명을 보전하고자 했는데, 하물며 형제겠는가? 이거이(李居易) 부자(父子)가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고서 도당(都堂)에게만 의논하여 나의 동기(同氣)를 살해했는데, 지금 인심이 안정되지 않은 까닭으로 내가 속으로 견디어 참으면서 감히 성낸 기색을 보이지 못하니, 그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군사들이 변중량·노석주와 남지(南贄) 등을 잡아 가지고 나오니, 변중량이 정안군을 우러러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공(公)에게 뜻을 기울이고 있은 지가 지금 벌써 두서너 해 되었습니다.” 정안군이 말하였다.

“저 입도 또한 고기덩이다.” 또 남지는 남은의 아우로서 이때 우상 절도사(右廂節度使)가 되었는데, 모두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가 뒤에 길에서 목을 베었다. 이제(李濟)가 나오니, 정안군이 이제에게 일렀다. “본가(本家)로 돌아가라.”

* 한산군(韓山君) : 이색(李穡)

* 추상(樞相) : 중추원의 상신(相臣)

* 주삼원수교서(誅三元帥敎書) : 고려 공민왕 때의 명장(名將)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 등 세 사람의 원수(元帥)를 목 벤 교서(敎書)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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