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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45] 1차 왕자의 난 - 3

[뉴트리션=조선왕조실록 기획 기사팀]

밤이 이경(二更)인데, 송현(松峴)을 지나다가 숙번이 말을 달려 고하였다.

“이것이 소동(小洞)이니 곧 남은 첩의 집입니다.” 정안군이 말을 멈추고 먼저 보졸(步卒)과 소근(小斤) 등 10인으로 하여금 그 집을 포위하게 하니, 안장 갖춘 말 두서너 필이 그 문 밖에 있고, 노복(奴僕)은 모두 잠들었는데, 정도전과 남은 등은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근 등이 지게문을 엿보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화살 세 개가 잇달아 지붕 기와에 떨어져서 소리가 났다. 소근 등이 도로 동구(洞口)로 나와서 화살이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니, 숙번이 말하였다. “내가 쏜 화살이다.” 소근 등으로 하여금 도로 들어가 그 집을 포위하고 그 이웃집 세 곳에 불을 지르게 하니, 정도전 등은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이근(李懃)·장지화 등은 모두 살해를 당하였다. 도전이 도망하여 그 이웃의 전 판사(判事) 민부(閔富)의 집으로 들어가니, 민부가 아뢰었다.

“배가 불룩한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안군은 그 사람이 도전인 줄을 알고 이에 소근 등 4인을 시켜 잡게 하였더니, 도전이 침실(寢室) 안에 숨어 있는지라, 소근 등이 그를 꾸짖어 밖으로 나오게 하니, 도전이 자그만한 칼을 가지고 걸음을 걷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다.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 밖에 나와서 말하였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 소근 등이 끌어내어 정안군의 말 앞으로 가니, 도전이 말하였다. “예전에 공(公)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예전이란 것은 임신년 을 가리킨 것이다. 정안군이 말하였다.

“네가 조선의 봉화백(奉化伯)이 되었는데도 도리어 부족(不足)하게 여기느냐? 어떻게 악한 짓을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 이에 그를 목 베게 하였다. 처음에 정안군의 부인이 자기 스스로 정안군이 서서 있는 곳까지 이르러 그와 화패(禍敗)를 같이하고자 하여 걸어서 나오니, 정안군의 휘하사(麾下士) 최광대(崔廣大) 등이 극력으로 간(諫)하여 이를 말리었으나, 종 김부개(金夫介)가 도전의 갓과 칼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부인이 그제야 돌아왔다.

도전이 아들 4인이 있었는데, 정유(鄭游)와 정영(鄭泳)은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급함을 구원하러 가다가 유병(遊兵)에게 살해되고, 정담(鄭湛)은 집에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처음에 담(湛)이 아버지에게 고하였다.

“오늘날의 일은 정안군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전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고려(高麗)를 배반했는데 지금 또 이편을 배반하고 저편에 붙는다면, 사람들이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이무(李茂)가 문밖으로 나오다가 빗나가는 화살을 맞고서 말하였다. “나는 이무이다.” 보졸(步卒)이 이무를 죽이려고 하니, 정안군이 말하였다. “죽이지 말라.” 이에 말을 그에게 주었다. 

남은은 반인(伴人) 하경(河景)·최운(崔?) 등을 거느리고 도망해 숨고, 이직(李稷)은 지붕에 올라가서 거짓으로 노복(奴僕)이 되어 불을 끄는 시늉을 하여 이내 도망해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대궐 안에 있던 사람이 송현(松峴)에 불꽃이 하늘에 가득한 것을 바라보고 달려가서 임금에게 고하니, 궁중(宮中)의 호위하는 군사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고함을 쳤다. 이천우(李天祐)는 자기 집에서 반인(伴人) 2명을 거느리고 대궐로 가는데, 마천목(馬天牧)이 이를 바라보고 안국방(安國坊) 동구(洞口)에까지 뒤쫓아 가서 말하였다.

“천우 영공(天祐令公)이 아닙니까?” 천우가 대답하지 않으므로, 천목(天牧)이 말하였다. “영공(令公)께서 대답하지 않고 가신다면 화살이 두렵습니다.” 천우가 말하였다. “그대가 마 사직(馬司直)이 아닌가? 무슨 일로 나를 부르는가?” 천목이 대답하였다. “정안군께서 여러 왕자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천우가 달려서 정안군에게 나아가서는 또 말하였다. “이번에 이 일을 일으키면서 어찌 일찍이 나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정안군이 박포(朴苞)와 민무질을 보내어 좌정승 조준을 불러 오게 하니, 조준이 망설이면서 점(占)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거취(去就)를 점치게 하고는, 즉시 나오지 않으므로, 또 숙번으로 하여금 그를 재촉하고서, 정안군이 중로(中路)에까지 나와서 맞이하였다. 

조준이 이미 우정승 김사형과 더불어 오는데 갑옷을 입은 반인(伴人)들이 많이 따라왔다. 가회방(嘉會坊) 동구(洞口)의 다리에 이르니, 보졸(步卒)이 무기(武器)로써 파수(把守)해 막으며 말하였다.

“다만 두 정승만 들어가십시오.” 조준과 김사형 등이 말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지나가매, 정안군이 말하였다.

“경 등은 어찌 이씨(李氏)의 사직(社稷)을 걱정하지 않는가?” 조준과 김사형 등이 몹씨 두려워하면서 말 앞에 꿇어앉았다. 이에 정안군이 말하였다. “정도전과 남은 등이 어린 서자(庶子)를 세자로 꼭 세우려고 하여 나의 동모 형제(同母兄弟)들을 제거하고자 하므로, 내가 이로써 약자(弱者)가 선수(先手)를 쓴 것이다.” 조준 등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하였다. “저들의 하는 짓을 우리들이 일찍이 알지 못했습니다.” 정안군이 말하였다.

“이같은 큰일은 마땅히 국가에 알려야만 될 것이나, 오늘날의 일은 형세가 급박하여 미처 알리지 못하였으니, 공(公) 등은 마땅히 빨리 합좌(合坐) 해야 될 것이오.” 노석주(盧石柱)와 변중량(卞仲良)이 대궐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시켜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와 우승지 김육(金陸)을 그들의 집에 가서 불러 오게 하니, 문화(文和)가 달려와 나아가서 물었다. “임금의 옥체(玉體)가 어떠하신가?” 석주(石柱)가 말하였다. “임금의 병환이 위독하므로 오늘 밤 자시(子時)에 병을 피하여 서쪽 작은 양정(?亭)으로 거처를 옮기고자 한다.” 이에 여러 승지들이 모두 근정문(勤政門)으로 나아갔다. 도진무(都鎭撫) 박위(朴?)가 근정문에 서서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군사가 왔는가? 안 왔는가?” 문화가 물었다. “이때에 임금이 거처를 피하여 옮기는가? 어찌 피리를 부는가?”

박위가 말하였다. “어찌 임금이 거처를 피하여 옮긴다고 하겠는가? 봉화백(奉化伯)과 의성군(宜城君)의 모인 곳에 많은 군마(軍馬)가 포위하고 불을 지른 까닭으로 피리를 분 것뿐이다.” 이보다 먼저 정안군이 숙번에게 이르기를,

“세력으로는 대적할 수 없으니, 정도전과 남은 등을 목 벤 후에 우리 형제 4, 5인이 삼군부(三軍府)의 문 앞에 말을 멈추고 나라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아서 인심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한결같이 쭉 따른다면 우리들은 살게 될 것이다.”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정안군이 돌아와 삼군부(三軍府)의 문 앞에 이르러 말을 멈추니, 밤이 벌써 사경(四更)이나 되었는데, 평소에 주의(注意)하던 사람들이 서로 잇달아 와서 모였다. 찬성(贊成) 유만수(柳曼殊)가 아들 유원지(柳原之)를 거느리고 말 앞에 와서 배알(拜謁)하니, 정안군이 말하였다. “무슨 이유로 왔는가?” 만수(曼殊)가 말하였다.

“듣건대, 임금께서 장차 신(臣)의 집으로 옮겨 거처하려 하신다더니 지금 옮겨 거처하지 않으셨으며, 또 변고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와서 시위(侍衛)하고자 한 것입니다.” 정안군은 말했다. “갑옷을 입고 왔는가?” 만수가 말하였다.

“입지 않았습니다.” 즉시 그에게 갑옷을 주고 말 뒤에 서게 하니, 천우가 아뢰었다. “만수는 곧 정도전과 남은의 무리이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안군이 말하였다. “옳지 않다.” 이에 회안군과 천우 등이 강요하여 말하였다.

“이같이 창졸한 즈음에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저지(沮止)시킬 수 없습니다.” 정안군이 숙번을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형세가 그만두기가 어렵겠다.” 하면서, 그 죄를 헤아리게 하니, 만수가 즉시 말에서 내려 정안군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서 말하였다. “내가 마땅히 자백(自白)하겠습니다.” 정안군이 종자(從者)를 시켜 말고삐를 놓게 하였으나, 만수는 오히려 단단히 잡고 놓지 않으므로, 소근(小斤)이 작은 칼로써 턱 밑을 찌르니, 만수가 고개를 쳐들고 거꾸러지는지라, 이에 목을 베었다. 정안군이 원지(原之)에게 이르렀다.

“너는 죄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회안군이 뒤따라 가서 예빈시(禮賓寺) 문 앞에서 목을 베었다. 조준과 김사형 등이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들어가 앉았는데, 정안군은 생각하기를, 방석 등이 만약 시위(侍衛)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궁문(宮門) 밖에 나와서 교전(交戰)한다면, 우리 군사가 적으므로 형세가 장차 물러갈 것인데, 만약 조금 물러가게 된다면 합좌(合坐)한 여러 정승(政丞)들이 마땅히 저편 군사의 뒤에 있게 될 것이므로, 혹시 저편을 따를까 여겨, 사람을 시켜 도당(都堂)에 말하였다. 

“우리 형제가 노상(路上)에 있는데, 여러 정승들이 도당(都堂)에 들어가 앉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마땅히 즉시 운종가(雲從街) 위에 옮겨야 될 것이다.” 마침내 예조(禮曹)에 명령하여 백관(百官)들을 재촉해 모이게 하였다. 친군위 도진무(親軍衛都鎭撫) 조온(趙溫)도 또한 대궐 안에 숙직(宿直)하고 있었는데, 정안군이 사람을 시켜 조온과 박위(朴?)를 부르니, 조온은 명령을 듣고 즉시 휘하(麾下)의 갑사(甲士)·패두(牌頭) 등을 거느리고 나와서 말 앞에서 배알(拜謁)하고, 박위는 한참 동안 응하지 않다가 마지 못하여 칼을 차고 나오니 정안군이 온화한 말로써 대접하였다. 박위는 군대의 세력이 약한 것을 보고 이에 고하였다.

“모든 처분(處分)은 날이 밝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의 뜻은 날이 밝으면 군사의 약한 형세가 나타나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붙좇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정안군이 그를 도당(都堂)으로 가게 했는데, 회안군이 정안군에게 청하여 사람을 시켜 목 베게 하였다. 

정안군이 조온에게 명하여 숙위(宿衛)하는 갑사(甲士)를 다 나오게 하니, 조온이 즉시 패두(牌頭) 등을 보내어 대궐에 들어가서 숙위하는 갑사를 다 나오게 하였다. 이에 근정전 이남의 갑사는 다 나와서 갑옷을 벗고 무기(武器)를 버리니, 명하여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처음에 이무(李茂)가 군대의 세력이 약한 것을 보고는 거짓으로 정신이 흐리멍덩하다고 일컬으면서 사람을 시켜 부축하고서 정안군에게 아뢰었다. “화살 맞은 곳이 매우 아프니 도당(都堂)의 아방(兒房) 에 나아가서 휴식하기를 청합니다.” 정안군은 말하였다. “좋다.” 조금 후에 이무는 박위가 참형(斬刑)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도로 나왔다. 

* 임신년 : 태조 즉위년

* 합좌(合坐) : 몇 사람의 당상관(堂上官)이 모여 대사를 의논함

* 아방(兒房) : 장신(將臣)이 머물러 자는 곳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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