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리션 특별기획-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69] 태상왕 이성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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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 특별기획-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69] 태상왕 이성계의 죽음
  • 조석민 교육 전문 기자
  • 승인 2019.01.2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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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왕의 존시를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으로, 묘호를 태조로 하다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하시다

[교육전문지 뉴트리션=조석민 교육 전문 기자]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했습니다. 임금이 항상 광연루 아래에서 자면서 친히 진선의 다소와 복약에 있어서 선후의 마땅함을 보살폈는데, 이날 새벽에 이르러 파루가 되자, 태상왕께서 담이 성하여 부축해 일어나 앉아서 소합향원을 먹었습니다. 

ⓒ 국사편찬위

병이 급하여 임금이 도보로 빨리 달려와 청심원을 드렸으나, 태상이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 승하했습니다.

상왕이 단기로 빨리 달려오니, 임금이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으니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습니다. 치상은 한결같이 '주자가례' 에 의하고, 봉녕군 복근으로 하여금 전을 주장하게 했는데요. 이에 예조에서 이렇게 아뢨습니다.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동한지(東漢志)》의 국휼고사(國恤故事)를 상고하면, ‘백관(百官)이 5일에 한 번 회림(會臨)하고, 고리(故吏)·이천석(二千石)·자사(刺史)·경도(京都)에 머무르고 있는 각 지방의 상계 연리(上計掾吏)는 모두 5일에 한 번 회림(會臨)하고, 천하(天下) 이민(吏民)은 발상(發喪)하여 3일을 임(臨)한다.’ 하였고,

또 대명(大明) 영락(永樂) 5년 7월 초4일 황후(皇后) 붕서(崩逝) 때의 예부 상례 방문(禮部喪禮榜文)을 상고하면, ‘경사(京師)에 있는 문무 백관(文武百官)은 본월(本月) 초6일 아침에 각각 소복(素服)·흑각대(黑角帶)·오사모(烏紗帽)를 갖추고 사선문(思善門) 밖에 다달아, 곡림례(哭臨禮)가 끝나면 봉위례(奉慰禮)를 행하고,

초8일 아침에 각 관원(官員)은 소복(素服)으로 띠[帶]와 효복(孝服)을 가지고 우순문(右順門) 밖에 이르러 착용하고, 성복(成服)을 기다려서 사선문(思善門)에 들어와, 곡림례(哭臨禮)가 끝나면 효복(孝服)으로 바꾸어 입고 봉위례(奉慰禮)를 행하고, 이것이 끝나면 각각 효복(孝服)을 가지고 나간다. 초9일·초10일도 예(禮)가 같다.’ 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대행 태상왕 전하(大行太上王殿下)께서 5월 24일에 승하하시었으니, 즉일(卽日)로 각사(各司)에서 소복(素服)·흑각대(黑角帶)·오사모(烏紗帽)를 갖추고 곡림 봉위(哭臨奉慰)하고, 26일에 이르러 각각 효복(孝服)을 착용하고 곡림 봉위하며, 28일 즉 승하하신 후 제5일에 이르러 시왕(時王)의 복제(服制)에 따라 삼차(三次)의 곡림 봉위례(哭臨奉慰禮)를 행하게 하소서.

이어 예조에서 또 "경외의 음악을 정지하고, 도살·가취를 금하고, 대소례와 조시를 정지하고, 제3일에 이르러 대신을 보내어 종묘에 고하소서." 라고 아뢨습니다.

태상왕의 존시를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으로, 묘호를 태조로 하다

상승한 태상왕의 나이가 많은 웃어른과 나이가 적은 아랫사람인 존시를 올리기를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라 하고, 묘호를 태조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조에서 이렇게 아뢨습니다.

신주로 반혼하는 것은 《예경(禮經)》에 실려 있는 것이요, 사진으로 봉사하는 것은 후세에서 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상승하신 태상왕의 재궁을 산릉에 안치한 뒤에 마땅히 고례에 따라 신주를 봉영하여 반혼제·우제·부제 등의 제사를 행하여야 합니다.

신의 왕후는 진용으로써 신주에 배사할 수 없으니, 먼젓번 인소전에 봉안한 진용은 궤속에 간직해 두고, 신주로써 배사하여 3년 뒤에 부묘토록 하며, 그 연후에 태상왕의 진용을 봉안한 다음 신의 왕후의 진용을 배향하면, 거의 고금의 예전이 아울러 행해져서 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태조의 시책과 시보

섭태부 예조 판서 이지와 섭중서령 한성 윤 맹사성을 보내어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시책·시보를 빈전에 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책에 이르기를,

"왕업(王業)을 창건(創建)하고 자손에게 모유(謀猷)를 남기는 것은 실로 대덕(大德)으로 말미암고, 이름을 바꾸어 시호(諡號)를 정하는 것은 오직 지공(至公)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공경하여 옛법에 따라서 아름다운 칭호[徽號]를 드립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대행 태상왕(大行太上王)께서는 신성(神聖)한 자품(資稟)을 타고나시고 관인(寬仁)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전조(前朝)의 쇠퇴한 말년을 당하여 능히 많은 난(難)을 평정하시고, 상천(上天)의 두터운 권우(眷佑)에 응하여 큰 기업(基業)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위(武威)를 바람과 우레처럼 떨치고 문치(文治)를 해와 달처럼 밝히셨습니다. 공경히 황제(皇帝)의 명령을 받아 국호(國號)를 고쳐서 새롭게 하였고, 신도(神都)를 달관(達觀)하시어 백성의 삶을 길이 편안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무강(無彊)한 운수(運數)를 열어주었으니 실로 호생(好生)의 마음에 근원한 것입니다. 정사(政事)는 곤궁한 사람을 먼저하고 은혜는 동식물(動植物)에 미쳤습니다.

외람히 간대(艱大)함을 계승하매 백년을 영양(榮養)할까 하였더니, 어찌 빈천(賓天)의 수레를 재촉하시어 홀연히 땅을 치는 슬픔을 남기셨습니까?

마땅히 추숭(追崇)의 예(禮)를 거행하여 귀미(歸美)의 정성을 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칭호를 지어서 후세 자손에게 전하여 보입니다.

삼가 모관(某官)을 보내어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호(尊號)를 올리기를,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를 ‘태조(太祖)’라 합니다.

우러러 바라옵건대, 충감(沖鑑)은 정충(精衷)을 굽어살피셔서 거듭 많은 복(福)을 주시어 자손을 천억년(千億年)에 보존하고, 가만히 홍조(洪祚)를 도우시어 천지(天地)와 더불어 구장(久長)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시보는 전자로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 지보(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之寶)' 라 쓰고, 체제는 봉숭하는 금보의 예를 썼습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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