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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 특별기획-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67] 의정부서 불교 퇴폐상 열거·금산사 등 토지 및 노비 환수 청하다 外

의정부에서 불교의 퇴폐상을 열거하고, 금산사 등의 토지와 노비를 환수할 것을 청하다

ⓒ 국사편찬위

[교육전문지 뉴트리션] 의정부에서 상서해 사서의 토전과 인구를 혁파할 것을 청했습니다. 이 때 금산사의 주지인 도징이 그 절의 종 강장, 강덕 형제를 간통하고, 토전의 소출과 노비의 공화를 모두 다 사용 했습니다. 와룡사 주지 설연이 그 절의 종 가이 등 다섯 명을 간통했습니다. 이에 의정부에서 이렇게 상소했습니다.

불씨(佛氏)의 도(道)는 청정(淸淨)으로 으뜸을 삼고, 계행(戒行)과 정혜(定慧)로 근본을 삼는 것입니다.

석가(釋迦)가 처음에 출가(出家)하여 설산(雪山) 가운데 들어가서 고행(苦行)한 지 6년 만에 그 도(道)를 이루고, 사위국(舍衛國)에 이르러 바리[鉢]를 가지고 입성(入城)하여 걸식(乞食)하며, 발[足]을 씻고 가부좌(跏趺坐)하여 설법(說法)하는데,

아난(阿難)이 마등가(摩藤加) 여자를 보고 참지 못하여, 마침내 범(犯)하였습니다. 석가가 능엄경(楞嚴經)을 설법하여 음란한 것으로 제일계(第一戒)를 삼았습니다.

석가는 불씨의 가장 높은 자인데, 조행(操行)이 근검(勤儉)하기가 오히려 이와 같았고, 아난(阿難)은 석가의 높은 제자이나, 색(色)을 가까이 하여 참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지금 각 절의 주지가 나가면 살찐 말을 타고 여리를 횡행하며, 들면 비복을 사역시켜 편안히 앉아서 먹으며, 토전의 소출과 노비의 공화로 마음대로 안마와 의복의 소용을 삼고, 심지어는 주색의 비용까지 삼고 있습니다.

도징과 설연의 사제 같은 자는 경을 외고 복을 비는 것도 즐겨 행하지 않으니, 이미 본사의 청정지교를 어기고, 또 국가의 복(福)을 구(求)하는 뜻을 어긴 것입니다.

불법이 동방에 이른 것은 삼국(三國) 때에 시작되었으니, 고구려 17대 소수림왕 때에 호승 순도가 진나라로부터 이르렀고, 백제 13대 침류왕 때에 호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로부터 이르렀는데, 그 초기에는 창건한 절이 한 둘에 지나지 않았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된 자도 수십 인에 불과했습니다.

그 뒤에 신라에 흘러 들어와서 그 설이 더욱 성하여, 삼국의 군신이 다투어 사사를 세웠고, 전조 때에 이르러서는 또 영건을 더하여 비보라 일컬었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일국의 토전과 인물로 망국의 사대 군신의 원당을 지탱하고, 또한 비보라는 명칭으로 폐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삼대 전에는 불법이 없었으나, 요·순·우·탕·문·무가 모두 백세를 향수하고, 세도가 화(和)하고 빛나며, 역년이 영구했습니다. 

한 명제 때에 이르러 〈불법이〉 비로소 중국에 들어와서, 위나라·나라 이래로 송나라·원나라에 이르기까지 난망이 계속하고, 향수와 역년이 모두 삼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양 무제는 가장 깊이 공경하고 믿어서, 세 번이나 몸을 바쳐 통태사의 종이 되고, 부처를 만들고 탑을 만들어 나라 안에 가득하였으나, 두 대가 못되어 망했습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기자가 모두 그 역년이 1천 년이나 되었으나, 당시에 또한 불법이 있지 않았습니다.

삼국 때에 이르러 고구려·백제가 비로소 불사를 지었으나, 세 나라 중에서 이들 두 나라가 먼저 당하였고, 신라 말년에는 성중에 불사가 반이나 되었는데, 나라가 곧 망했습니다.

전조 태조가 유계서를 지어, '신라가 불사를 많이 지어서 망(亡)하기에 이른 것을 마땅히 거울삼아야 한다.' 하였고, 태조가 창건한 것은 밀기 밖에는 나가지 않았었는데, 그 뒤에 군신들이 각각 원당을 세웠습니다.

의왕은 여러 사사에 순행하여 달마다 10여 곳에 이르고, 해마다 중 3만 명을 궁정에서 밥 먹였으나, 마침내 화(禍)를 면치 못하였고 희왕도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공민왕은 부처를 섬기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여, 처음에는 보허로 스승을 삼고, 뒤에는 나옹으로 스승을 삼아, 운암사를 지어 항상 백 명의 중을 기르고, 연복사를 수리하여 해마다 문수회를 베풀었습니다.

보허와 나옹은 모두 사리가 있고 득도하였다고 칭하였으나, 공민왕의 화(禍)를 구제하지 못하였고, 공양왕의 부처를 섬김이 또한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마침내 나라가 망하고 말았으니, 나라를 돕고 복을 빈다는 말이 진실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한 지가 이미 오래고 믿는 자가 많아서 갑자기 고칠 수 없사오니, 전조의 밀기로서 비보 사사에 붙인 것과 외방 각관의 답산기로서 사사에 붙인 것은 신·구경의 오교·양종의 각 1사와, 외방(外方) 각도(各道)의 부관(府官) 이상은 선교 각 1사, 감무관 이상은 선교 중 1사에 붙이어 아직 그 전대로 하게 하고,

소재관으로 하여금 그 노비의 인구수를 성적하여 각기 그 절의 10리 밖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고, 밥을 짓고 공급하는 일은 다만 사역시키는 노자(奴子)만을 쓰게 하되,

백 명이 사는 곳은 20명, 50명이 사는 곳은 10명, 10명이 사는 곳 이하는 2명씩 매년 교대하여 윤번으로 입역하게 하고, 그 나머지 노비의 신공과 토전의 소출은 모두 다 거두어 들이고,

노비가 없는 사사는 비보 이외의 사사 노비와 토전으로 적당히 옮겨 주되, 살고 있는 중의 많고 적은 것에 따라서 매 계월마다 헤아려 제급하여, 각각 그 법으로 수행하게 하고, 때때로 고찰을 가하여 도관찰사에게 보고하여,

매양 연말을 당하면 포폄 신문하여 출척에 빙거하게 하고, 만일 비자가 절 안에서 입역하는 자가 있으면 일체 모두 금단하며, 비자가 절 안에서 내왕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 중과 노비의 집에 내왕하는 중은 다른 사람이 진고하는 것을 허락하되,

포 1백 필을 징수하여 고한 자에게 상으로 주고, 그 중은 머리를 길러서 충군하소서. 그 나머지는 각사의 노비는 모두 속공시키고, 절 안에서 밥을 짓고 불을 때는 등사는 직책이 없는 잡승으로 충당 하게 하소서.

그대로 따르고, 오직 연경·흥천·화장·신광·석왕·낙산·성등·진관·상원·견암·관음굴·회암·반야전·만의와 서울의 감로 등의 사사는 예전대로 하게 했습니다. 이에 진주 목사 안노생이 하전을 올려 아뢰었습니다.

신은 듣자오니, 천하 생긴 뒤에 한번 다스려지고 한번 어지러워지는데, 성인(聖人)이 교대로 일어나서 점차로 제거하고 다스렸습니다.

요(堯)임금 때를 당하여 큰 물이 횡류(橫流)하였으니, 대우(大禹)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사람이 어별이 되었을 것이요,

하나라·상나라 말년에 걸·주가 포악한 짓을 하였으니, 탕(湯)과 무왕(武王)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백성이 도탄(塗炭)이 되었을 것이요,

융적(戎狄)이 난(亂)을 꾸미고 호표(虎豹)가 재앙이 되었을 때, 주공(周公) 같은 성인(聖人)이 있지 않았다면 누가 능히 응징(膺懲)하고 구축(驅逐)하여 그 해(害)를 없앴겠습니까?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포학(暴虐)하게 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능멸(陵蔑)하여 찬탈(簒奪)의 화(禍)가 일어나서, 천리(天理)가 거의 멸(滅)할 뻔하였으니, 중니(仲尼)가 붓[筆]으로 베[誅]지 아니하였다면 천하 사람이 군신(君臣)이 없을 것이요,

양주(楊朱)·묵적(墨翟)이 횡행(橫行)하여 천하를 속이고 어지럽혔으니, 맹가씨(孟軻氏)가 변명하여 배척하지 아니하였다면 천하의 풍속이 금수(禽獸)가 되었을 것입니다.

석씨(釋氏)의 해(害)는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이 있습니다. 임금은 임금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노릇 하고, 아비는 아비노릇 하고, 자식은 자식노릇 하는 것이 집안과 나라의 대전(大典)이요, 인륜(人倫)의 대본(大本)이니, 하루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한(漢)나라 말년에 우리 성인(聖人)의 도(道)가 회색(晦塞) 하고 밝아지지 못하여, 부도씨(浮屠氏)가 일어나서 사괴(邪怪)한 말을 전파(傳播)하여 천하 백성들을 몰아 이적(夷狄)으로 들여보내고, 죄(罪)와 복(福)의 말로 미끼[餌]를 삼아서 사람의 심지(心志)를 현혹(眩惑)시키고, 사람의 이목(耳目)을 귀머거리와 소경으로 만들어서,

우리 군신(君臣)의 의(義)를 허물어뜨리고 우리 부자(父子)의 인(仁)을 멸(滅)하였사온데, 그 법이 마침내 동방(東方)에 이르러서 큰 난(亂)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국군(國君)이 믿으면 ‘비보(裨補)’라 이름하고, 경대부(卿大夫)가 믿으면 ‘원당(願堂)’이라 칭하여, 일웅(一雄)이 창(唱)하면 백자(百雌)가 화답(和答)하여, 온 세상이 쏠리어 기쁘게 따라서, 다투어 절[寺]과 탑(塔)을 영건하여 경내(境內)에 꽉 찼고, 그 거실(居室)을 금벽(金璧)으로 꾸미어서 왕궁(王宮)보다 사치하고,

그 몸은 배부르고 따뜻하여 세속(世俗)보다 부유(富裕)하며, 나라의 양인(良民)을 도둑질하여 사역(私役)을 만들어서, 적(籍)에 속(屬)해 있지 않은 자가 만(萬)으로 헤아리게 되니, 나라의 호구(戶口)가 이로 인해 날로 감소됩니다.

그리고, 주색(酒色)의 욕심을 공공연히 자행(恣行)하여, 음란한 것은 의(義)를 패(敗)하고, 욕심은 예(禮)를 패(敗)하니,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淸心寡慾]하며, 복을 빌고 나라를 복되게[祝釐福國]하는 도(道)에 있어 어찌 할 수가 있습니까? 심합니다.

고구려(高句麗)·신라(新羅)·백제(百濟) 세 나라의 군신(君臣)은 간사한 말[邪說]에 빠져서 강상(綱常)의 이치(理致)를 해(害)하고 멸(滅)하여 망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어찌 족히 의논할 것이 있습니까?

전조(前朝) 태조(太祖)가 창업(創業)하여 대통(大統)을 전(傳)해 장차 5백 년이 되었고, 그 사이에 유능[有爲]한 임금과 다스림을 보좌하는 신하가 또한 간혹 있었으니, 석씨(釋氏)가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을 해하는 것은 알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침내 고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간사한 것을 없애려면 마땅히 조기(早期)에 분변하고 미약(微弱)할 적에 막아서, 점점 불어나고 퍼지지 못하게 하여 그 근저(根柢)를 끊는 것이 가합니다.

그러나, 전조(前朝)의 역대(歷代) 군신(君臣)들이 삼국(三國)의 숭신(崇信)하던 여세(餘勢)를 이어받아, 옛날과의 거리가 오래지 않고, 유풍(流風)과 유속(遺俗)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형세가 불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방금 하늘이 동방(東方)을 도아서 우리 성인(聖人)을 내어 대통(大統)을 잇게 하셨으니, 왕위에 오르신 뒤에 매사(每事)를 요(堯)·순(舜)을 본받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본받아서, 강기(綱紀)를 세워 왕도(王道)를 높이고 오랑캐의 법을 억제하여, 대중(大中)·지정(至正)한 도(道)를 행하고, 황탄(荒誕)·방사(放邪)한 말을 내치어,

성심(聖心)에서 재량(裁量)하고 대의(大義)로써 결단(決斷)하여, 특별히 중외(中外)에 밀기(密記)를 태거(汰去)시켜 증치(增置)한 사찰(寺刹)에 붙이시고, 전민(田民)을 거두어서 나라에 회복시켜 천년(千年)의 폐단을 고쳐 없애고, 삼대(三代)의 정치를 만회(挽回)하셨으니, 하늘이 내신 성지(聖智)의 자품(資品)이 아니면 어찌 여기에 이르렀겠습니까?

성인(聖人)의 도(道)가 어두었다가 다시 밝아지고, 사설(邪說)의 행함이 병식(屛息)되고 방사(放肆)하지 못하여, 교화(敎化)가 밝아지고 조야(朝野)가 맑아졌으니, 이것은 동국(東國)이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성사(盛事)입니다.

홍수(洪水)의 재앙이 아니었다면 어찌 요(堯)·순(舜)·우(禹)의 대덕(大德)을 알며, 걸(桀)·주(紂)의 포학(暴虐)과 호표(虎豹)의 해가 아니었다면 어찌 탕(湯)·무(武)·주(紂)·공(孔)의 지극히 어짊[仁]을 알며, 양(楊)·묵(墨)의 요망함이 아니었다면 누가 맹가씨(孟軻氏)의 대공(大功)을 알겠습니까?

지금 석씨(釋氏)의 해(害)가 아니었다면 일국(一國)의 사람들이 어찌 성상(聖上)의 화하(華夏)를 써서 이적(夷狄)을 변화(變化)하는 대덕(大德)과 대공(大功)을 알겠습니까? 막힌 것을 형통(亨通)하게 하고 빠진 것을 건지며, 환(患)을 없애고 난(亂)을 푸는 도(道)가 전성(前聖)과 후성(後聖)이 부절(符節)을 합하는 것 같으니, 아아! 성(盛)합니다.

신(臣)이 보잘것없는 재주로 성조(盛朝)를 만나서 다행히 우악(優渥)한 은택(恩澤)을 입어 유신(儒臣)의 열(列)에 참여하였으니, 어찌 감히 성덕(聖德)을 노래하고 일월(日月)의 빛을 도와 광채를 무궁하게 남기지 않겠습니까? 만기(萬機)의 여가(餘暇)에 특별히 관람(觀覽)해 주신다면, 신(臣)이 천지(天地) 사이에서 초목(草木)과 더불어 함께 썩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이 아름답게 여기어 받아들였습니다. 대개 와룡사(臥龍寺)는 진주(晉州) 지경에 있는데, 설연(雪然)의 간사(奸邪)한 짓이 노생(魯生)으로 말미암아 적발됐습니다.

중들이 절간의 노비를 상자나 친족에게 주는 것을 금지하다

중들이 사사의 노비를 제자나 일가 사람에게 사사로이 주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에 사헌부에서 아뢰었는데요.

각종의 중들이 공이 있다고 칭하여 사사 노비를 속여 얻어서 마음대로 제자와 족인에게 주는 것은 일체 모두 속공하고, 사사 노비를 공이 있다고 칭하여 서로 주어서 제 사사를 이루는 것은 이제부터 영구히 금하소서.

절의 수와 노비·전지를 줄이는 것에 반대하여 승려 수 백명이 신문고를 치다

조계사 중 성민이 신문고를 쳤습니다. 승도들이, 절의 수를 줄이고 노비와 전지를 삭감하는 까닭으로, 날마다 정부에 호소하여 예전대로 회복하도록 요구하니, 정승 하윤이 답하지 아니하였는데, 이에 성민이 그 무리 수백 명을 거느리고 신문고를 쳐서 아뢰었으나, 임금이 끝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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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식 교육 전문 기자  concert@nutrition2.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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