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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 특별기획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63] 호패의 도입과 폐지

[교육전문지 뉴트리션] 이번 시리즈에선 태종실록 중 '호패의 도입과 폐지' 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 중국 정세와 관련 군정(軍丁)의 등록 대장을 만들도록 명하다 △ 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사람마다 호패를 주고, 호구 장부를 만들다 △ 삼부의 대신들을 모아 놓고 호패법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다 △ 지평주사 권문의가 건의한 호패법을 의정부에 내려 의논, 시행케 하다 △ 의정부 제안대로 호패법을 정하다 △ 의정부에서 호패법의 일부를 고치다 △ 전국의 모든 관리와 백성이 처음으로 호패를 차다 △ 호패법을 어긴자에 대한 처벌 규정등 거듭 강조하다 △ 호패를 고쳐 주다 △ 중앙과 지방에서 호패제도를 폐지하다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중국 정세와 관련 군정(軍丁)의 등록 대장을 만들도록 명하다

ⓒ 국사편찬위

군정(軍丁)의 성적법(成籍法)을 정했습니다. 승추부에서 이렇게 아뢨습니다.

"지금 중국에 군사가 일어났으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국내 인민(人民)의 수를 알아서 갑수(甲首)와 조호(助戶)를 실(實)한 것으로 택하여 차정(差定)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입니다. 무릇 중외(中外)의 인민에게 모두 호패(號牌)를 주고, 인하여 명수를 기록하여 장적(帳籍)을 만드는 것이 어떠합니까? 경작(耕作)하는 것의 다소(多少)를 상고하여 장적을 만드는 것이 어떠합니까?"

그러자, 삼부(三府)에 명하여 회의하게 하고, 각사(各司)에 가부(可否)를 물으니, 의논이 분운(紛紜)했고 마침내 경작(耕作)의 다소(多少)를 상고하여 성적(成籍)하는 것이 좋다고 아뢰고, 행이(行移) 하였습니다.

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사람마다 호패를 주고, 호구 장부를 만들다

의정부에서 사람마다 호패(號牌)를 주고, 인하여 호구(戶口)를 성적(成籍)하기를 청하니, 윤허했습니다. 그 법은 한결같이 무인년의 수교(受敎)에 의하여 시행 했습니다.

삼부의 대신들을 모아 놓고 호패법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다

삼부(三府)의 대신(大臣)을 모아 호패(號牌)의 가부(可否)를 의논하니, 하윤(河崙)이 "행하여야 합니다. 마땅히 하여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평주사 권문의가 건의한 호패법을 의정부에 내려 의논, 시행케 하다

지평주사(知平州事) 권문의(權文毅)가 호패법(號牌法)을 행하도록 청했고,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순박(淳朴)과 야박(野薄)의 변함이 있는 까닭으로 법을 세움에는 상경(常經)과 권도(權道)의 다름이 있습니다. 명(明)나라 태조 황제(太祖皇帝)는 법령과 기강(紀綱)을 엄하게 하고 또 밝혀서 군민(軍民)의 무리에게 모두 호패(號牌)를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유망(流亡)할 마음을 근절(根絶)하여 호구(戶口)가 증감(增減)하는 폐단이 없어졌습니다. 이는 세상의 변함에 따라서 법을 바루는 방법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국가에서 법을 세우고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일체 중화(中華)의 제도에 따라 모조리 갖추었는데, 오로지 호패(號牌)만은 미치지 못하여 유망(流亡)하는 것이 서로 잇따르고, 호구가 날마다 줄어 듭니다. 

감사와 수령(守令)이 비록 찾아서 잡는 데 정성을 다하나 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호패(號牌)로 식별함이 없어서 많은 사람에게 섞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원하건대, 향장(鄕長)·사장(舍長)·이장(里長)의 법을 세워서 1백 호에 향장(鄕長)을 두고, 50호에 사장(舍長)을 두고, 10호에 이장(里長)을 두어, 양민(良民)과 천례(賤隷)의 액수를 두루 알지 않음이 없게 하고, 중국의 제도에 의하여 모두 호패를 주어 출입할 때에 지니게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유이(流移)하거나 도망하여 숨는 자가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법이 한번 세워지면, 사람들이 모두 토착(土着)이 되어 정한 직업이 있을 뿐 아니라 일정한 마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실로 군사를 강하게 하고 국가를 굳건히 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에 의정부에 내려서 의논하여 시행하게 했습니다

의정부 제안대로 호패법을 정하다

의정부에서 호패(號牌)의 법을 의논하여 아뢨습니다. 총 세가지로 구분되었습니다. 먼저 첫째의 내용은 이러 했습니다.

"형제(形制)는 길이가 3촌 7푼, 너비가 1촌 3푼, 두께가 2푼이고, 위는 둥글고 아래를 모지게 합니다. 2품 이상은 상아(象牙)를 쓰나 녹각(鹿角)으로 대용하고 오로지 예궐(詣闕)할 때에만 사용하며, 4품 이상에는 녹각을 쓰나 황양목(黃楊木)으로 대용하며, 5품 이하에는 황양목을 쓰나 자작목(資作木)을 대용하며, 7품 이하에는 자작목을 씁니다. 

위에서는 아래의 것을 사용할 수 있으나 아래에서는 위의 것을 사용할 수 없으며, 서인(庶人) 이하는 잡목(雜木)을 씁니다. 경중(京中)은 한성부(漢城府)에서, 외방(外方)은 각 계수관(界首官)에서 이를 맡아 보는데, 본인으로 하여금 패(牌)를 만들어 바치도록 하며, 끝나면 바야흐로 착인(着印) 하도록 허락하고 자기가 만들 수 없는 자는 나무를 바치도록 허락하여 공장(工匠)으로 하여금 만들어 주도록 하소서."

다음으로 둘째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면(面)의 글은 2품 이상은 ‘아무 관[某官]’이라 쓰는데 시직(時職)·산직(散職)이 같으며, 현관(顯官) 3품 이하는 ‘아무 관[某官]’이라 쓰고, 산관(散官) 3품 이하는 ‘아무 관[某官]·성명(姓名)·거처 아무 곳, 아무 리[居某處某里]’라 쓰는데 서인(庶人)도 또한 같으며, 다만 얼굴은 무슨 색이고 수염이 있는지 없는지를 덧붙입니다. 

군관(軍官)은 직차(職次)에 얽매이지 않고 아울러 ‘아무 군[某軍]·아무 패[某牌] 소속[屬]’이라 쓰고 신장(身長)은 몇 척(尺) 몇 촌(寸)인지를 쓰는데, 시직·산직은 모두 같습니다. 

잡색인(雜色人)은 ‘아무 역(役) 사람·거처 아무 곳’을 쓰고, 종들은 ‘아무 집 종·나이 얼마·거처 아무 곳 아무 리·얼굴 색·수염이 있는지 여부·신장이 몇 척 몇 촌’이라 써서 화인(火印)을 찍되, 현관(顯官)은 착인(着印)을 면제합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이렇습니다.

"호패(號牌)의 명령은 오는 10월 초1일에 영(令)을 내려 두루 알리고 11일부터 비로소 차례대로 만들어 지급하여 12월 초1일까지 지급하기를 끝마칩니다. 

만약 패(牌)를 바치고 호패를 받지 않는 자가 있으면 중형으로 논죄하며, 그 기일 이후에 호패를 받지 않는 자는 사람에게 진고(陳告)하도록 허락하여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에 의하여 논죄합니다. 만약 남에게 빌리거나 빌려 주는 자가 있으며 각각 2등을 감합니다. 

유이(流移)하는 자는 1등을 감하며, 이장(里長)·수령(守令)으로서 능히 고찰하여 본거지로 쇄환(刷還)하지 못하는 자는 각각 2등을 감하며, 관진(關津)의 관리로서 호패가 없는 이를 마음대로 통과시키는 자도 또한 2등을 감합니다. 

호패를 위조(僞造)하는 자는 위조보초율(僞造寶鈔律)로써 논죄하며, 호패를 잃어버리는 자는 불응위율(不應爲律)에 의하여 태형(笞刑)을 집행하고 다시 지급하며, 호패를 함부로 두는 자도 불응위율로써 태형을 집행하되, 나이 70세 이상과 10세 이하는 논하지 말게 하소서."

그러자 임금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의정부에서 호패법의 일부를 고치다

정부에서 호패(號牌)의 사의(事宜)를 아뢨고, 정부에서 한성부(漢城府)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뢨습니다. "지금의 호패에서는 동반(東班)은 9품에 이르기까지 나이·용모를 쓰지 않으나, 서반(西班)은 첨총제(僉摠制)에서 부사정(副司正)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를 쓰니, 미편(未便)한 것 같습니다. 서반 4품 이상은, 빌건대, 동반의 예에 의하도록 하소서." 
이에 임금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전국의 모든 관리와 백성이 처음으로 호패를 차다

중외(中外)의 대소 신민(大小臣民)이 비로소 호패(號牌)를 찼습니다. 각도의 인구가 호패로 인하여 추가하여 나타나는 자가 날로 많아지니, 임금이 백성들에게 소요(騷擾)스러울까 염려하여 임금의 뜻을 담아 관청이나 관리에게 전하는 전지(傳旨)를 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호패를 지금 이미 시행하였으니, 백성 가운데 이름을 숨기는 자는 없을 것이다. 만약 호패의 수로써 차역(差役)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놀라서 의심할 것이다. 옛날대로 경작하는 땅의 많고 적은 것으로써 차역하라."

호패법을 어긴자에 대한 처벌 규정등 거듭 강조하다

호패(號牌)의 법을 거듭 밝혔고, 사헌부에 명했습니다. "대소 인원(大小人員) 가운데 호패가 없는 자는 계문(啓聞)을 없애고 전에 수교(受敎)한 것에 의하여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써 논죄하라." 라고 말입니다.

호패를 고쳐 주다

호패(號牌)를 바꾸어 주었고, 한성부(漢城府)에서 아뢰었습니다. 

"호패(號牌)의 법은 인구(人口)의 귀천(貴賤)을 구별하려는 것인데, 간교한 무리들이 감히 깎아내고 고치는 짓을 행하여 진위(眞僞)가 혼동되니, 청컨대, 호패의 전면(前面)에 ‘한성부(漢城府)’ 3자를 횡서(橫書)하고 아래의 화인(火印)을 찍으며, 

후면(後面)에 다만 화인(火印)을 찍고 성명(姓名)·연갑(年甲)·신장(身長)·면모(面貌)를 적당한 데 따라서 모조리 쓰고 그 자획(字畫)을 새긴다면, 비록 깎아내고 고치고자 하더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빌건대, 이러한 방식에 의하여 고쳐서 지급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하지(下旨)했습니다. "새로 호패를 받는 자는 지금 규정한 법식에 의하여 화인(火印)을 찍어서 만들어 주고, 전에 호패를 받아 간 자는 오는 을미년 3월부터 시작하여 고쳐 만들어 지급하되, 그 중에 3월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고쳐서 받기를 자원(自願)하는 자는 들어주라."

중앙과 지방에서 호패제도를 폐지하다

중외(中外)의 호패(號牌)를 혁파했습니다. 쉽게 풀이하면,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한 패인 호패를 폐지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태종실록 중 호패의 도입과 폐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기사에선 지방행정조직 개편에 대해 서술할 계획입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 정정·반론보도 청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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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민 교육 전문 기자  concert@nutrition2.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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