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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 특별기획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60] 신문고

억울한 사람은 등문고를 치도록 하자는 의정부의 상소. 신문고로 고치다

사진 = 국사편찬위

[교육전문지 뉴트리션] 고(告)할 데가 없는 백성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품은 자는 나와서 등문고(登聞鼓)를 치라고 명령하였다. 의정부에서 상소하기를,

"서울과 외방의 고할 데 없는 백성이 원억(冤抑)한 일을 소재지의 관사(官司)에 고하여도, 소재지의 관사에서 이를 다스려 주지 않는 자는 나와서 등문고를 치도록 허락하고,

등문(登聞)한 일은 헌사(憲司)로 하여금 추궁해 밝혀서 아뢰어 처결하여 원억한 것을 펴게 하고, 그 중에 사(私)를 끼고 원망을 품어서 감히 무고(誣告)를 행하는 자는 반좌율(反坐律)을 적용하여 참소하고 간사한 것을 막으소서."

하여, 그대로 따르고, 등문고를 고쳐 신문고(申聞鼓)라 했다.

신문고가 설치되다. 하윤 등에게 신문고 유래의 설치 등에 대해 묻다

ⓒ 국사편찬위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 등에게 입대(入對)를 명했다. 윤과 우정승(右政丞) 이무(李茂)·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등이 계(階)에 올라 읍(揖)한 뒤에 나아가니, 임금이 조용히 ""계상(階上)과 계하(階下)에서 읍하는 것이 어느 때의 예인가? 곧장 나오고 곧장 물러가는 것이 가하지 않은가? 이것은 필시 원(元)나라 조정의 예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하륜)이 "원나라 조정의 예는 절하고 꿇어앉는 것뿐이고, 이것은 당(唐)나라·송(宋)나라의 예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임금이 "전조(前朝)의 태조(太祖)가 일어난 것이 중국의 어느 대(代)에 해당하는가?" 라고 묻자 윤이 "전조의 태조가 진(晉)나라에서 고명(誥命)을 받았으니, 중국의 오대(五代) 시대입니다." 라고 답했다.

임금은 또 윤에게 "신라는 중국의 어느 시대에 개국하였는가?" 라고 하자 윤은 "신라는 한(漢)나라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元年)에 개국하였습니다." 라고 임금에게 말했다.

이때에 신문고(申聞鼓)가 마침 이루어졌는데, 무(이무)가 말하기를, "신문고를 설치하는 것이 좋기는 좋은데, 무고(誣告)로 치는 자도 간혹 있습니다." 라고 했다. 이에 윤이 이렇게 말했다.

"신문고를 치는 법이 사실이면 들어주고, 허위이면 죄를 주고, 월소(越訴) 로 치는 자도 또한 이같이 하는 것입니다.

만일 외방 사람이 수령에게 호소하여 수령이 밝게 결단하지 못하면, 관찰사에게 호소하고 또 헌부(憲府)에 호소하며, 헌부에서 또 밝게 결단하지 못한 연후에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리가 백성의 송사를 결단함에 있어 상총(上聰)에 아뢸까 두려워하여 마음을 다해 정찰(精察)하기 때문에, 백성이 그 복을 받으니, 실로 자손 만세의 좋은 법입니다. 원컨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행하소서."

그러자 임금이 가하다고 했고. 임금이 "등문고(登聞鼓)는 어느 시대에 시작되었는가?" 라고 묻자 윤이 "송나라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라고 답했고, 임금이 "송조(宋朝) 이전에도 있었는가?" 라고 하자 윤이 "이것은 삼대(三代)의 법입니다." 라고 말했다. 상이 말하길 "그런가? 진선(進善)의 정(旌) 도 또한 이것과 같다." 라고 했다.

신문고를 설치한다는 교서

ⓒ 국사편찬위

교서(敎書)를 내렸는데 그 교서는 이러했다.

"내 부덕(否德)한 사람으로 대통[丕緖]을 이어받았으니, 밤낮으로 두려워하면서 태평(太平)에 이르기를 기약하여 쉴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이목(耳目)이 샅샅이 미치지 못하여 옹폐(壅蔽) 의 환(患)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이제 옛법을 상고하여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한다.

온갖 정치의 득실(得失)과 민생(民生)의 휴척(休戚) 을 아뢰고자 하는 자는, 의정부에 글을 올려도 위에 아뢰지 않는 경우, 즉시 와서 북을 치라.

말이 쓸 만하면 바로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말이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용서하여 주리라.

대체로 억울함을 펴지 못하여 호소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서울 안에서는 주무 관청에, 외방에서는 수령(守令)·감사(監司)에게 글을 올리되, 따져서 다스리지 아니하면 사헌부(司憲府)에 올리고, 사헌부에서도 따져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바로 와서 북을 치라.

원통하고 억울함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상항(上項)의 관사(官司)에서 따져 다스리지 아니한 자는 율(律)에 따라 죄를 줄 것이요, 월소(越訴)한 자도 또한 율(律)에 따라 논죄(論罪)할 것이다.

혹시 반역을 은밀히 도모하여 나라[社稷]를 위태롭게 하거나, 종친(宗親)과 훈구(勳舊)를 모해(謀害)하여 화란(禍亂)의 계제(階梯)를 만드는 자가 있다면 여러 사람이 직접 와서 북치는 것을 허용한다.

말한 바가 사실이면 토지 2백 결(結)과 노비(奴婢) 20명을 상으로 주고 유직자(有職者)는 3등(等)을 뛰어올려 녹용(錄用)하고, 무직자(無職者)는 곧 6품직에 임명할 것이며,

공사 천구(公私賤口)도 양민(良民)이 되게 하는 동시에 곧 7품직에 임명하고, 따라서 범인의 집과 재물과 종과 우마(牛馬)를 주되 다소(多少)를 관계하지 않을 것이며, 무고(誣告)한 자가 있다면 반좌(反坐) 의 율(律)로써 죄줄 것이다.

아! 아랫사람의 정(情)을 상달(上達)케 하고자 함에 금조(禁條)를 마련한 것은 범죄가 없기를 기약함이니, 오직 중외(中外)의 대소 신료(臣僚)와 군민(軍民)들은 더욱 조심하여 함께 태평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라."

의정부에서 신문고를 관리하는 방법을 건의하다

ⓒ 국사편찬위

의정부에서 이렇게 상소했다.

"신문고는 순군(巡軍)의 영사(令史) 한 명과 나장(螺匠) 한 명으로 지키게 하고, 와서 치려는 사람이 있으면 영사는 달려가 관리에게 고하여 그 북을 치려는 사유를 물어,

만약 역적을 음모한 일이면 바로 치게 하고, 또 정치의 득실과 원통하고 억울함을 펴지 못한 등의 일에 대하여서는,

그것이 월소(越訴)가 아니면 실정을 자세히 물어서 초사(招辭)를 받아들이고, 즉시 나장에게 그의 주소를 알게 한 뒤에 북을 치도록 하소서."

그러자 임금이 "먼저 북을 치게 한 뒤에 사람을 시켜 그 사는 곳을 알게 하라." 라고 말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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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식(교육 뉴스 1부)  concert@nutrition2.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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