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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 특별기획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58] 도입

하윤의 건의에 따라 사섬서를 설치하여 저화를 맡게 하다

ⓒ 국사편찬위

[교육전문지 뉴트리션] 문하 주서(門下注書)·삼사 도사(三司都事)·중추원 당후(中樞院堂後)를 혁파하고 처음으로 사섬서(司贍署) 영(令) 1인, 승(丞) 2인, 직장(直長) 2인, 주부(注簿) 2인을 두어 저화(楮貨)를 맡게 하였으니, 하윤(河崙)의 의논에 좇아 초법(鈔法)을 행하고자 함이었다.

사헌부에서 저화의 폐지를 주장, 사섬서를 혁파할 것을 청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하여 사섬서(司贍署)를 혁파하도록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소(疏)의 대략은 이러했다.

"우리 동방(東方)은 옛날부터 저화(楮貨)를 쓰지 않고 포화(布貨)를 습용(習用)하였기 때문에, 사람마다 저화를 싫어하니, 원컨대, 저화 만드는 역사를 정지하고, 사섬(司贍)의 관사(官司)를 파하소서."

대사헌(大司憲) 이지(李至)와 장령(掌令) 박고(朴翺)를 불러 명령하기를, 

"경들이 백성에게 이(利)되는 일로 상언(上言)하니, 내가 진실로 기쁘다. 저화가 쓰기에 경편(輕便)하여 내가 행하고자 하는데, 경들이 중국에 알릴 수 없다는 이유로 말하나, 저화는 다만 우리 나라 안에서만 행하는 것이니, 중국에서 안다 하더라도 무슨 죄가 있겠는가?"

라고 하자, 고(박고(朴翺))가 이렇게 대답했다.

"신들이 어찌 감히 백성들에게 이롭지 못한 일로써 말하겠습니까? 백성들이 중하게 여기는 것은 쌀과 포(布)뿐입니다.

전하께서 저화의 법을 행하고자 하시어 5승포(五升布)의 사용을 금하시고, 또 경상·전라 두 도에서 바치는 포를 모두 쌀로 바꾸시니, 백성의 폐단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신들은 알지 못하거니와 저화로 생재(生財)의 문을 삼은 연후에야 국가의 재용(財用)이 어찌 넉넉하겠습니까?" 

이에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의 말이 옳다. 비록 그러하나, 오래 지속하면 저화의 법이 행하여질 것이다. 만일 저화의 법을 행하여 백성들에게 폐해가 있다면, 내가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고치겠다."

하고,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에게 명하여 지와 고에게 음식을 먹이었다.

사섬서에서 새로 만든 저화 2천 장을 올리다

사섬서(司贍署)에서 새로 만든 저화(楮貨) 2천 장을 올렸다.

녹봉을 저화를 병용하여 지급하다

녹(祿)을 나누어 주는 데 저화(楮貨)를 병용하도록 명했다.

국고의 쌀을 저화를 가지고 사게 하다

백성에게 저화(楮貨)로써 국고(國庫)의 쌀을 무역하라고 명하였으니, 의정부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저화 한 장은 상5승포(常五升布) 한 필(匹)에 준하는 것으로 쌀 두 말[斗]의 값이다.

의정부에서 저화의 통용 방안에 대해 아뢰다

의정부에서 저화(楮貨)의 통행법(通行法)을 올리었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외방의 민간에는 저화(楮貨)가 유포(流布)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쌀로 외방의 저화를 사고 면주(緜紬)·목면(木緜)을 사서 상납(上納)하게 하면 백성들이 저화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 윤허했다.

저화의 통용을 위해 풍저창의 미두와 사재감의 어육을 민간의 저화와 바꾸다

풍저창(豊儲倉)의 미두(米豆)와 사재감(司宰監)의 어육(魚肉)으로 민간(民間)의 저화(楮貨)를 바꾸었으니, 저화를 통용케 하고자 함에서였다.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일렀다.

"일반 백성들이 무역을 할 때에 포목만을 쓰려 하고, 저화는 쓰려 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아마도 습속(習俗)이 포목만을 쓸 줄 알고, 저화가 쓰기에 편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화를 가지고 민간의 오종포(五綜布)를 바꾸어 모두 공가(公家)로 들여오면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저화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저화가 민가에 아직 두루 돌지 못했는데 갑자기 포목의 사용을 금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이를 원망할 것이다. 저화를 제조할 판(板)을 더 만들어서 인쇄해 내어 사람마다 모두 저화를 얻을 수 있게 한 뒤에 기한을 정하여 포목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 옳겠다."

 

사평부의 건의에 따라 저화 사용 확대 방안을 세우다

저화 통행법(楮貨通行法)을 폈다. 사평부에서 아뢰기를,

"모든 저자[市]안에서 저화(楮貨)와 상포(常布) 반반씩으로 하여 서로 사고 팔게 하되, 파는 사람이 저화를 받지 않거나, 사는 사람이 저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자는 매매한 물건을 모두 관(官)에 몰수하소서." 

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사장에서 저화가 통용되지 않으니 시한부로 오승포의 사용을 금하다

날짜를 정하여 오승포(五升布)의 사용을 금했다. 갑사들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 등은 모두 외방(外方)에서 와서 양식을 저자[市]에서 사는데 저자 사람들이 저화(楮貨)를 쓰지 아니하오니, 원컨대 저화로써 관(官)에서 곡식을 바꾸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박석명에게 명했다.

"나라 사람들이 저화(楮貨)를 쓰지 아니하니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경중(京中)은 오는 5월 초하루, 외방(外方)은 15일을 한(限)하여 오승포(五升布)를 쓰지 못하게 하라."

 

경시서에서 시한부로 오승포의 사용을 금한다는 방을 붙이다

경시서(京市署)에서 방(牓)을 내어 붙이고 날짜를 정해 오승포(五升布)의 사용을 금하고, 오로지 저화(楮貨)를 사용하게 하였으니 서울은 7월 15일, 외방(外方)의 근도(近道)는 8월 15일, 원도(遠道)는 9월 15일을 한(限)하여 민간(民間)의 오승포를 다 바꾸게 했다.

기한이 지난 뒤에 몰래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무직자(無職者)는 가산(家産)을 몰수하고 율(律)에 따라 결장(決杖)하며 유직자(有職者)는 직첩(職牒)을 거두고 율에 따라 결장하여 공사(公私)의 상오승포(常五升布)를 일절 엄하게 금지했다.

호조에 명하여 저화 1장으로 민간의 오승포 1필을 바꾸게 하다

호조(戶曹)에 명하여 저화(楮貨)를 가지고 민간(民間)의 오승포(五升布) 2만 4천 6백 필을 바꾸었다. 처음에 저화 한 장을 오승포 4필에 준하게 하였었는데, 백성들이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호조에 명하여 오승포 1필을 저화 한 장에 준하게 하니, 며칠이 안 되어 2만여 장을 바꾸게 되었다. 이에 오승포 3필을 저화 한 장에 준하여, 그 포(布)를 세 끝[三端]으로 나누어 주니, 백성들이 다투어 이것을 바꾸었다.

저화와 상오승포를 함께 통용하도록 하고, 경상도 주포세를 회복하다

저화(楮貨)와 상오승포(常五升布)를 겸용하도록 명하고, 경상도 주포(紬布)의 세(稅)를 회복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교장(交章)하여 상언(上言)했다.

"가만히 보건대, 경상도는 산이 막히고 바다가 막히어, 조세 수납(輸納)의 어려움이 다른 도의 배가 되기 때문에, 고려조(高麗朝) 이래로 그 지방 산물(産物)의 편의에 따라 혹은 주포(紬布)로 거두고, 혹은 면서(綿絮)로 거두어, 일찍이 조[粟]와 쌀[米]을 거두지 않았으니, 백성의 희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제도를 정하여 5백 년을 내려오며 행하였어도 폐단이 없었습니다. 근래에 국가의 재용(財用)이 핍절(乏絶)됨으로 인하여, 각 품(品)의 녹봉으로 주는 포화(布貨)를 4필(匹)에 준(准)하는 저화(楮貨)로 대신하고, 주포를 거두던 밭은 모두 조(租)를 바치게 하여, 국용(國用)을 후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아름다운 뜻이오나, 그러나 사평부(司平府)의 문부(文簿)로 상고하여 보면, 지난 신사년에 주포전(紬布田)에서 거둔 곡식[粟]이 2만 8천여 석인데, 수운[漕轉]으로 상납한 수는 6천여 석에 지나지 못합니다.

금년 임오년의 초·이번(初二番) 녹봉(祿俸)의 전청(傳請)한 수가 만여 석에 이르니, 그렇다면 주포전에서 거두는 조(租)가 다만 그 도의 군자(軍資)에 충당할 뿐이고, 경성(京城)의 저축에는 도움이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경상도는 한재(旱災)·황재(蝗災)·상재(霜災)로 말미암아 흉년이 거듭 이르러서, 백성들이 조(租)를 바치는 것이 살[肥膚]을 베는 것 같은데, 또 뒤쫓아 거두면 원망이 장차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지금부터 경상도 공안(貢案)을 주포(紬布)에 붙이어 모두 전(前) 수량(數量)에 의하여 수납(輸納)하게 하고, 녹봉미(祿俸米)의 부족한 수는 그 주포로 충당하여, 초번·이번의 전청(傳請)을 일체 모두 정지하면, 녹봉이 넉넉하면서 경성의 저축이 모손(耗損)되지 않고, 원망이 풀리면서 변방 고을의 부세(賦稅)가 다 수납될 것입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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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민(교육 뉴스 3부)  concert@nutrition2.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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