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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55] (태종) 정안공, 조선의 왕이 되다.

임금이 왕세자에게 선위하다. 선위하는 교서

ⓒ 국사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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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문지 뉴트리션] 임금이 왕세자(王世子)에게 선위했다.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는 교서(敎書)를 받들고, 도승지(都承旨) 박석명(朴錫命)은 국보(國寶)를 받들고 인수부(仁壽府)에 나아가서 올리니, 세자가 울면서 받지 않았다. 임금이 세자에게 전지(傳旨)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말 달리고 활 잡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는데, 즉위한 이래로 혜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재앙과 변괴가 거듭 이르니,

내가 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나 어찌할 수 없다. 세자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이치에 통달하고, 크게 공덕이 있으니, 마땅히 나를 대신하도록 하라."

세자가 부득이하여 수선(受禪)했다. 그 교서는 이러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조종(祖宗)께서 어질고 후하시므로 덕을 쌓아 큰 명(命)을 성취하고, 우리 '신무 태상왕(神武太上王)' 이 처음 일어날 때에 미쳐, 왕세자(王世子)가 기선(幾先)에 밝아서 천명(天命)을 명확히 알고, 먼저 대의(大義)를 주창(主唱)하여 큰 기업(基業)을 세웠으니, 우리 조선(朝鮮)의 개국이 세자의 공이 많았다.

그러므로, 당초에 세자를 세우는 의논에서 물망이 모두 돌아갔는데, 뜻하지 않게도 권간(權姦)이 공을 탐하여 어린 얼자(孽子)를 세워 종사를 기울어뜨리려 하였다. 하늘이 그 충심(衷心)을 달래어 계책을 세워 감정(戡定)해서 종사를 편안히 하였으니, 우리 조선을 재조(再造)한 것도 또한 세자의 공에 힘입은 것이다.

나라는 이때에 이미 세자의 차지가 되었으나, 겸허(謙虛)를 고집하여 태상왕께 아뢰서 착하지 못한 내가 적장자(嫡長子)라 하여 즉위(卽位)하도록 명하게 하였다.

내가 사양하여도 되지 않아서 면강(勉强)하여 정사에 나간 지 지금 3년이 되었으나, 하늘 뜻이 허락하지 않고, 인심이 믿지 않아서, 황충과 가뭄이 재앙으로 되고, 요얼(妖孽)이 거듭 이르니, 진실로 과인[寡昧]의 부덕한 소치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있다.

하물며 내가 본래 풍질(風疾)이 있어 만기(萬機)에 현란(眩亂)하니,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정무에 응하면, 미류(彌留)에 이를까 두려웠다. 무거운 짐을 내놓아 덕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볼까 생각하였으니, 거의 위로는 하늘 마음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여망(輿望)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왕세자는 강명(剛明)한 덕을 품수(稟受)하고 용맹과 지략의 자질이 빼어났다. 인의(仁義)는 타고날 때부터 가졌고, 효제(孝悌)는 지성(至誠)에서 비롯되었다. 학문은 의리에 정(精)하고, 영명한 꾀는 변통(變通)에 합하였다.

진실로 예철(睿哲)하기가 무리에 뛰어나는데, 겸공(謙恭)하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였다. 일찍이 제세(濟世) 안민(安民)의 도량으로 능히 발란(撥亂) 반정(反正)의 공을 이루었다. 구가(謳歌)가 돌아가는 바요, 종사(宗社)가 의뢰하는 바이니, 어질고 덕 있는 사람이 마땅히 대통(大統)을 이어야 하겠다. 이제 세자에게 명하여 왕위(王位)를 전하여 즉위하게 한다.

나는 장차 물러나 사사 집에 돌아가서 한가롭게 놀고 편안히 봉양받으면서 백세(百歲)를 보전하겠다. 아아! 하늘과 사람의 정(情)은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종사의 대통(大統)은 마땅히 지친(至親)에게 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부자 형제가 서로 잇는 것이 실로 고금의 통한 의리이다. 아아! 너희 종친(宗親)·기로(耆老)·대소 신료(大小臣僚)는 모두 내 뜻을 받아서 길이 유신(維新)의 정치를 보전하도록 하라." 

참찬문하(參贊門下) 권근(權近)이 지은 것이다. 좌승지 이원(李原)을 보내어 태상왕에게 선위(禪位)할 뜻을 고하니, 태상왕이 말했다.

"하라고도 할 수 없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이제 이미 선위하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백관이 세자전에 나가서 하례를 행하니 받지 않다

ⓒ 국사편찬위

백관이 세자전(世子殿)에 나아가서 하례를 행하니, 받지 않았다.

의정부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가 청정하기를 청하다

ⓒ 국사편찬위

의정부(議政府)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가 청정(聽政)하기를 청했다.

세자가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사면령을 반포하다

ⓒ 국사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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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예궐(詣闕)하여 조복을 갖추고 명(命)을 받고, 연(輦)을 타고 수창궁(壽昌宮)에 이르러 즉위(卽位)했다. 백관의 조하(朝賀)를 받고 유지(宥旨)를 반포하였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계운 신무 태상왕(啓運神武太上王)’께서 조종(祖宗)의 쌓은 덕을 이어받고 천인(天人)의 협찬(協贊)을 얻어서, 크나큰 명(命)을 받고서 문득 동방(東方)을 차지하여, 성한 덕과 신통한 공과 큰 규모와 원대한 도략으로 우리 조선 억만년 무궁한 운조(運祚)를 이룩하였고, 우리 상왕(上王)께서는 적장자(嫡長子)로서 공경히 엄한 명(命)을 받고서 보위(寶位)에 즉위하여,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림을 이룬 지 이제 3년이다.

지난번에 적사(嫡嗣)가 없었으므로 미리 저부(儲副)를 세워야 한다고 하니, 이에 소자(小子)가 동모제(同母弟)의 지친(至親)이고, 또 개국(開國)하고 정사(定社)할 때 조그마한 공효가 있다 하여 나를 책봉해 세자를 삼고 감무(監撫)의 책임을 맡기었는데, 감내하지 못할까 두려워 매양 조심하고 송구한 마음을 품었다.

어찌 생각하였으랴! 이달 11일에 홀연히 교지(敎旨)를 내려 이에 즉위하도록 명하시었다. 두세 번을 사양하였으나 이루어진 명령을 돌이킬 수가 없어서, 이미 13일 계유(癸酉)에 수창궁에서 즉위하였다.

돌아보건대, 이 작은 몸이 대임(大任)을 응하여 받으니 무섭고 두려워서 깊은 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종친(宗親)·재보(宰輔)·대소 신료(大小臣僚)에 의뢰하니, 각각 마음을 경건히 하여 힘써 내 덕을 도와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바로잡도록 하라.

명에 응하는 처음을 당하여 마땅히 너그러운 은전(恩典)을 펴서 경내에 사유(赦宥)하여야 하겠다. 건문(建文) 2년 11월 13일 새벽 이전의 상사(常赦)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 이미 발각되었거나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미 결정되었거나 결정되지 않았거나, 모두 용서하여 면제한다.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하여 말하는 자는 그 죄로 죄주겠다. 아아! 천지(天地)의 덕은 만물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왕자(王者)의 덕은 백성에게 은혜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늘과 사람의 두 사이에 위치하여 위로 아래로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면, 공경하고 어질게 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에게 부지런히 하는 것이다. 힘써 이 도에 따라서 부하(負荷)된 임무를 수행하겠다. 너희 신민들은 나의 지극한 회포를 몸받도록 하라."

주상을 높여 상왕이라 하고, 상왕의 거처를 공안부, 중궁의 거처를 인녕부라 하다

ⓒ 국사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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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主上)을 높여 상왕(上王)을 삼고, 부(府)를 세워 ‘공안부(恭安府)’라 하고, 중궁(中宮)의 부(府)를 ‘인녕부(仁寧府)’라 했다.

민제(閔霽)로 여흥백(驪興伯)을, 김사형(金士衡)으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이거이(李居易)로 문하(門下) 좌정승을, 조박(趙璞)으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정구(鄭矩)로 대사헌을, 이백강(李伯剛)으로 청평군(淸平君)을, 김수(金需)로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를, 이내(李來)로 예문 학사(藝文學士)를, 맹사성(孟思誠)으로 좌산기(左散騎)를, 김구덕(金九德)으로 중승(中丞)을 삼았다. 밤 2경에 추동(楸洞)095) 본궁(本宮)으로 돌아왔다.

각도의 관찰사·절제사·수령이 서울에 와서 진하하지 못하게 하다

ⓒ 국사편찬위

각도의 관찰사·절제사·수령 등으로 하여금 서울에 와서 진하(進賀)하지 못하게 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http://stdweb2.korea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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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민(교육 뉴스 3부)  concert@nutrition2.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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